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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의 마지막 글

 


외솔 선생님 서거 15시간 전에 탈고하신 마지막 글입니다.

보시기 편하게 재입력합니다.(당시 기록그대로 옮깁니다.)

- 출처 : 연세적십자회문집/청송/1971





<> 추모

[외솔과 한글] - 편집자주


  이 세상에 허다한 사람이 태어나서 오직 한 번의 생애를 한 개인의 이름으로 살다가, 영겁의 역사 공간과 시간 속에 묻혀 수없이 사멸되어 갔다.


  생명의 문을 열면서부터 다시 생명의 문을 닫아야 하는 그 일생은, 인간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규칙이며 영원한 질서이다. 작년에 별세하신 외솔선생께서는 그 육신은 영원한 인간의 규칙과 질서 속에 사셨지만 오히려 그 분은 이 나라, 이 겨레의 이름으로써 위대한 투쟁과 고난의 삶으로 펼쳐졌던 까닭이다.

 

  고인이 되신지도 어연 1년이 지나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으셨던 외솔선생의 큰 유업과 남기신 뜻을 한 일간신문 사설을 통해 알고자 합니다.

 

  [외솔 최 현배 박사가 숨지기 15시간 전에 한글 전용에 과연 무슨 부작용이 있나(부제 '아무리 과장해도 별일 없음이 밝혀졌다')라는 글을 마지막 탈고한 사실이 밝혀져, 한글만을 위해 살다간 77년의 생애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월간 교육 연구(발행인 그 통체) 4월호에 게재할 예정으로 청탁했던 이 글은, 최 박사가 와병을 무릅쓰고 지난 22일 오전 11시 탈고한 것인데, 원고 독촉차 최 박사를 찾아가 마무리짓는 표정을 지켜보던 한 동윤(교육사 기자)씨는 '다음날 출근 글에 라디오에서 최 박사의 부음을 듣고서는 꼭 우리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 곧장 한글 학회로 조문을 갔었다'면서 울먹였다. 다음은 최 박사의 마지막 유고를 발췌한 것이다.

 

  '한글이 창제 발표된지 이미 5백년이 지났다. 한글의 참값에 관하여는 반포당시에 내어편 ((훈민정음 해례))에 명백히 설명되어 있으나, 그 뒤의 우리 조상들이 한자 중독에 걸리어 능히 한글의 우수함을 깨치지 못하고, 교육과 실제 생활에서 이를 소외하고 지났다가 서기 1883년, 갑오 개화를 즈음하여 비로서 학교 교육과 신문, 잡지 발간에 버젓하게 쓰이기 비롯하여, 차차 제 원기를 회복하여 오다가, 1910년의 병술치욕으로 다시 천길 낭떠러지에 무참한  음을 당하여, 강포한 이민족의 압제 아래에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당하였었다. 하나님이 도우사 1945년에 해방을 맞아, 겨레와 함께 한글을 되살아남을 얻었다.

  

  한글을 높여 쓰는 일이 곧 우리 스스로를 높이는 일임을 누구나 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평범한 진리임을 노소와 현우를 물론하고 다 한가지로 몸소 깨닫아야 할 때이거늘 세상에는 아직도 옛날의 완고한 편견을 꾹 지니고서, 한글만 쓰기로 하는 일은 대단한 혼란을 빚어내는 위험한 일인 양 떠드는 사람이 없지 아니함을 정말 한심한 일이다. 훌륭한 글자가 어째서 제 스스로 글자노릇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이율배반도 이만 저만도 아니다. 사오년 전에, 나에게 이태리 대사 마이로님이 말하였다.

 

  '내가 한국에 와서 느낀 바가 있노라. 한국민은 훌륭한 말씨와 훌륭한 글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은 쓰지않고 남의 글자와 남의 말씨를 숭상해 쓰고 있으니 이는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한글쓰기의 근대화를 외면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따라 한글만 쓰기의 근대화 작업이 잘 되고 잘 못됨은, 곧 겨레와 나라의 부침과 성쇠를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상하.귀천.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한가지로 한글을 높이고 사랑하여, 천재 일우의 이 좋은 기회를 잘 타서 한글만 쓰기의 완성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글만 쓰기는, 실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사적 대사건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만 한다.

 

  우리는 왕년에 왜식 성을 정당화하여 어쩔 수 없이 본성을 버리는 '개자식' 노릇을 했어온즉, 이제 배달겨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하여 중국식 성 '李, 金, 崔, 安......'을 버리고 국내의 관행이나 다른 연유를 따라, '원성, 김해, 소별, 진주......'로 고치는 용단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세간에는 '한글만 쓰기'는 곧 한자말을 그 음만 적으면 고만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보기='인화절물지입엄금, 우와 여히 상위 무함').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차라리 '소(牛), 하주'(이런 말이 있다 치고서)를 '소하주(小荷主)'로 곡해할 수는 있겠마는, '소하주(小荷主)'를 '소(牛)하주'로 오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글만 쓰기를 반대하는 비뚤어진 태도로써, 일부러 이런 조작 걱정을 하는 것은 너무도 부당하다고, 나는 경고하는 동시에 그보다는, 한글만쓰기에 협조하는 태도로써 '撒水車'를 '물뿌리는차'라고, 풀 못 나게 하는 차가 수입된다면 무엇이라고 이름지을 것이 좋을까, 하고서 건설적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야 한다고 충고하는 바이다.

 

  한국인 가운데 유식하다는 사람들은, 영어 낱말의 맞춤을 하나만 잘 못 쓰는 것은 수치로 여길 줄 알면서, 제 나라의 글적기에서는 틀리는 것을 예시로 알 뿐 아니라, 그것의 바로잡음을 따지는 것을 몹시 부당한 성가신 일로 여기는 태도를 하고 지난다. 이것은 분명코 제 스스로를 무가치한 것으로 치는 때문이다.

 

  한글만 쓰기는 큰 과오 없이 잘 되어 가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수년전부터 재판관계 문서를 순 한글 가로줄로 하고 있으며, 큰 착오 있음을 아직 듣지 못하고 있음을 이때에 아울러 생각해야만 한다.']

 첨부파일
연세적십자회문집_청송_1971_1.2.3.4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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