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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선생님 서거52주기 추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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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23일 
외솔선생님 서거52주기 추모모임 영상






외솔 최현배 선생 서거 52주기 추모식 열리다

50여 명 참석한 가운데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앞에서 열려
23일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 서거 52주기를 맞아 외솔회(이창덕 회장)와 한글 단체들은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터에서 김홍범 한남대 교수 사회로 추모식을 열었다.

이날 꽃샘추위에도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김종택 한글학회 재단 이사장, 김석득 전 회장,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회장, 최용기 해외동포책보내기협의회 이사장, 차재경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 김문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장을 비롯하여 50여 명이 참석하여 추모 열기를 더했다.
  
외솔의 친손이자 외솔이 앞장서 세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최홍식 회장은 유족을 대표하여, 외솔의 뜻을 잇고 있는 한글 단체들에 고마움을 표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데는 한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니 이제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세종 정신과 외솔 정신을 함께 이어가자고 말했다.

21회 외솔상을 받은 바 있는 전인초 연세대 명예교수는 추도사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김치, 아리랑 등 우리나라 모든 것을 삼키려 하고 있는데, 한글만큼은 감히 넘보지 못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세종대왕, 주시경을 잇는 외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황준석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외솔 선생은 한글전용 운동을 통해 문맹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이바지했고 그것이 오늘날 경제발전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하면서 국립한글박물관이 외솔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한글문화를 더 발전시키도록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25년간 고교 한글나무 지도교사로 봉직하면서 외솔 정신을 잇는 후학을 양성하고 문학을 통해 외솔 꿈을 펼쳐온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은 기도문을 통해 학자로서, 한글운동가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최현배 선생 인격을 더욱 힘차게 이어가자고 했다.

외솔 최현배는 1894년 경남 울산군에서 태어나 1910년부터 1913년까지 주시경 스승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말본을 배우며 한말글학자, 한글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말본>(1937) 저술을 통해 우리말 문법을 체계화하여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의 문법 기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글갈>(1942) 저술을 통해 훈민정음, 한글 역사를 최초로 집대성했다. <한글의 바른 길>(1937),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1953) 등을 통해서는 한글운동의 당위성과 바른길을 제시했다. 광복 직후 미 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한글전용 교과서의 길을 열었다.

1932년 어느 식당 방명록에 남긴 친필 '한글이 목숨'이 오늘날까지 남아 평생 한글을 위해 몸 바친 고인의 정신을 웅변해 주고 있다. 1970년 서거 후 국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여(1970.3.27.) 고인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좀 더 조직적으로 고인의 뜻을 잇기 위해 외솔회가 1970년에 조직되어 활발히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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